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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차로사랑문학대상2018 공모 장려상 - 눈물샘 만드는 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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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쓴이 : 배삼동 기자
  • 19.01.11 16:3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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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 62

 

                                          김 순 희 (안동시 신세동)
 
7년 전 일이다.

나는 시어머니와 한동네 몇 집 사이에 두고 따로 사는데 입맛이 없으시고 기운도 없다고 하셔서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가서 특별한 병은 없으시고 노환이시라기에 입원을 시켜 드리고 영양주사 링거 맞으시는걸 보고 집에 왔다. 들어서자마자 따르릉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아이고, 순희야 나 죽겠다.” 엄마의 목소리가 곧 숨 넘어 가실 것 같았다.

엄마, ? 어디 아파 응?”

아이고 배 아파 못살겠다. 나 죽을랑 갑데이...” 혼자 계시는 엄마는 동네에도 거의 노인들만 있고 친척들도 떨어져 살고 하니까 급한 마음에 멀리 있는 나한테 전화 하신 것이었다.

엄마, 전화 끊고 잠깐 기다려하고는 안동의 친구들한테 몇 군데 알아봤더니 사정들이 있어 엄마께 가 볼 상황들이 안 되었다. 나는 전라북도에서 안동의 119로 전화해서 주소를 가르쳐주고 엄마를 안동병원으로 모셔다 주실 것을 부탁했다.

   

나와는 거리가 너무 멀고, 시어머니가 입원해 계시니 엄마께는 매정한 딸이 된 것 같고, ‘어마가 큰 병이라도 생겼나불안하기도 하고 가엾은 엄마생각에 눈물이 막 쏟아졌다. 그래서 경기도에 있는 오빠한테 연락을 했더니 급하게 안동병원으로 간 오빠께 연락이 왔다.

오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순희야, 엄마가 담석증이란다. 그래서 지금 수술 들어갔다.” “, 수술? 어떻게 담석증이... , 우리 엄마가 왜~” ‘작지만 쇳덩어리보다 더 강한 우리 엄마인데...’ 막 울었다. “수술하면 괜찮다고 한다.” 하고 오빠는 나를 안심시키셨지만 나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시어머니가 계신 병원으로 가서 엄마의 사정 얘기하고 남편의 허락으로 안동을 갔다. 병원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고 엄마, 왜 아팠어?” 우리 모녀는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오빠도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엄마의 몸에서 나온 담석이 한줌이나 되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나의 엄마는 아프지도, 병원도 모르고 사시는 줄 알았는데 무심하게 살았던 나는 그저 엄마가 가엾고 죄송할 뿐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고 노름빚까지 엄마께 짊어지어 놓으시고 위장병으로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으니 우리 5남매를 빈손으로 시작해서 엄하게 강하게 모두 바르고 착하게 잘 키워주시기 까지 얼마나 많은 고생과 그 옛날 배도 많이 곯으셨음을 나는 알고 있다. 정말로 억순이, 똑순이 나의 엄마이기에 무능하시고 먼저 가신 아버지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우린 5남매이지만 그래도 엄마 옆에 보호자로 내가 있기로 했다. 수술 후 엄마는 1주일 있다가 병원에서 퇴원했다. 나는 119로 전화해서 감사하다고 정중히 말했다. 엄마는 이번에 니 아니랬으면 나 죽었을낀데... 고맙데이...김 서방이 걱정이다. 얼른 너 집에 가봐라하시며 재촉 하셨다. “엄마 또 아프면 연락해엄마와 나는 깊은 포옹으로 눈시울을 적시며 언제부터인가 내 집이 된 남편이 있는 부안으로 돌아왔다.

   

엄마, 나 잘 왔어하고 전화 했다. “그래 고생 많았다. 니 가방 자꾸(지퍼)열면 얼마 있을게다. 김 서방 맛난 거 사줘라~” "아이 엄마는 또하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가방을 열어보니 하얀 봉투에 빳빳한 만 원권 20장을 넣어 놓으셨다. “아무튼 엄마는, 이래저래 눈물을 뺀다니까눈물을 뚝뚝 흘리는 나를 보고 옆에 있던 남편은 엄마께 미안했는지 당신이 왕눈이라 원래 눈물이 많잖아하며 미소로 넘겼다.

엄마는 엄마의 딸이었기에 내가 예쁘고 착하고 소중하므로 나이 차이가 11년이던 남편과의 결혼을 반대 했었지만 지금은 사위의 진심을 알고 많이 예뻐해 주신다. 담석수술 후에도 엄마는 손을 놀리지 않으셨다. 식당의 파김치거리, 쪽파 수십 단을 눈물 콧물 흘리시며 다듬어 주시며 조금의 수공료, 방앗간의 고추꼭지 따 주시며 약간의 용돈을 벌어서 자식들에겐 힘든 내색 한 번 안하시는 엄마이시다.

   

가끔 안부전화는 드리는데 두 달 전에는 전화 받는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는 게 의심이 돼서 언니와 만나서 엄마한테 들렀다. 엄마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당장 병원으로 모시고 가서는 몇 가지 검사결과 담도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의사의 말에 언니와 나는 마주보며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엄마는 우리들에게 조금의 힘듦과 어려움도 안주시고 깨끗하시고 예쁘게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나는 눈물이 더 나올 수 없을 정도로 울 수밖에 없었다. 아직 체 한 달도 안 되었지만 임종을 지켜본 나는 엄마의 온기가 지금도 느껴지고 이 세상에 안 계신다는 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엄마! 엄마는 정말 좋은 데로 가셨지?’ 우리들에게는 늘 말씀하셨잖아. 정직하고 어른들 공경하고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그 말씀 잊지 않고 엄마처럼 예쁘게 사는지 잘 지켜봐주시고, 엄마 자식들에겐 그 어느 누구보다 훌륭하신 제 1인자 울 엄마, 나의 엄마, 하늘보다 땅보다 더 많이 사랑합니다. 편안히 계시길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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